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카사쿠 킨지 (문단 편집) == 후카사쿠 킨지와 영화 == 후카사쿠 킨지의 영화에서는 [[장난감]]이라는 작품 빼고는 '''사람이 죽는다'''. 중요해 보이는 인물도 갑자기 허무하게 급사하는 예측불허의 전개가 많다. 그리고 죽으면 그 인물 이야기는 사실상 끝이다. 그 인물이 하던 것도 뭔가 할 것 같았던 것도 다 베일에 덮여 사라지면서 시청자에게 상당한 허무감과 충격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카사쿠 킨지 자신은 전쟁을 겪어서 폭력을 반대한다고 하는데도 대부분의 영화가 이렇다. 그렇다고 모든 영화가 허무하게 끝나는 건 아니다. 후카사쿠 킨지는[[http://ja.wikipedia.org/wiki/%E5%AE%9F%E9%8C%B2%E6%98%A0%E7%94%BB|실록영화]]에 입문한건 당시 일본 B급 영화계는 [[실록]]영화가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실록 영화는 실화에 기반한 야쿠자 영화를 이르는 말인데 임협영화라고도 한다. 일본에서 '''실록'''하면, '''[[조선왕조실록]]'''이 아니라 야쿠자 이야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 영화계는 1950년대에 시대극 붐이 일어났다. 그러나 [[구로사와 아키라]]감독과 [[미후네 토시로]] [[주연]]의 [[요짐보]]와 [[츠바키 산주로]]가 흥행하면서 일본 시대극은 변신을 한다. 그전의 시대극은 로닌도 서민도 야쿠자도 짙은 화장을 했다. 칼로 베어도 피나 베이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 [[가부키]]풍 이었지만 이제는 [[그로테스크]] 시대극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던중 [[츠루타 코지]]의 [[인생극장]][* 참고로 그냥 '''[[쌈마이]] 영화'''이다.]가 대박나고 1964년에는 본격 야쿠자 영화 바쿠토가 나와서 야쿠자 영화는 흥행의 시대가 된것이다. 물론 그 때 [[쇼와잔협전]]도 나오긴했다. 그러던중 질과 양에서 높은 수준인 토에이 야쿠자 영화가 다른 영화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생극장 시리즈, 쇼와잔협전, 일본협객전등이 나오기 시작했다. 예술영화 감독으로 재조명중인 이시이 테루오도 야쿠자 영화를 만들었다고... 이런 야쿠자 영화는 전공투들에게도 인기를 얻어서, 하루의 운동이 끝나면 영화관으로 직행했다. 그 당시에는 TV, 특히 컬러TV가 많이 보급되지 않아서 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보급은 되긴 되었는데 가난한 자취생, 노동자, 건달, 한량들은 살 길이 없었다(...) 사회가 혼란스럽자 정보를 갈구하던 대중들은 주간지의 옐로우 저널리즘덕에 자극적인 걸 접할수있게 되자 야쿠자 영화는 힘을 잃었다. 하지만 야쿠자 영화의 금자탑인 [[의리없는 전쟁]]이 대박나자 현실을 각색한 야쿠자 영화가 인기를 끌고 후카사쿠 킨지는 감독으로써의 주가가 올라갔다. 높은 관객에도 불구하고 야쿠자를 미화해서 비난받는 등 사회적 지위가 낮고 영화계에서도 무시를 당하던 야쿠자 영화였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허무주의적인 베이스의 의리없는 전쟁은 각계로 절찬되어 영화 작품상을 수상하고 스가와라 분타도 주연 남우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비디오의 보급으로 야쿠자 영화는 추락하고 비디오 영화의 시대가 열린다. 대표적인 연출로는 과격하게 흔들리는 [[핸드헬드]] 촬영과 화면을 잠시 멈추고 정지 샷을 보여주면서 자막과 내레이션을 넣어 이야기를 진행하는 연출이 있다. 이 화면 멈추기는 필름과 촬영 시간을 아끼면서 영화 시간은 늘리기 위해 쓰던 저예산 기법이었으나 후카사쿠는 그것을 적재적소에 워낙 절묘하게 잘 써서 후카사쿠를 상징하는 연출이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인기가 없는 감독이다. 감독 작품의 수위가 장난이 아니라 대부분 수입되지 않아서 보기가 매우 어려우며, 일본어를 아는 사람도 의리없는 전쟁은 히로시마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기 쉽지 않고 번역도 제대로 된 게 없다. 한국에서는 배틀로얄 외에는 후카사쿠 킨지 작품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본 영화를 많이 따라하던 20세기 중반의 한국 영화계에서도 후카사쿠 킨지의 스타일을 이어받은 한국 감독은 많지 않았다. 한국만 이런 게 아니고 같은 이유로 해외 영화계에서도 일본처럼 높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고 한다. 칸, 베를린, 베니스 그 어떤 외국의 유명 영화제에서도 후지사쿠 작품에 상을 준 적이 없다. 의외로 후카사쿠 킨지는 한국의 영화계가 아닌 [[예능]]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 예능에서는 의리없는 전쟁, 배틀로얄 등 그의 영화 작품의 OST를 넣는다거나, 연출과 편집을 따라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또한 추격전을 할 때는 후카사쿠 킨지 작품 연출을 오마주하기도 했다. 다만 후카사쿠의 영화를 직접적으로 따라한 건 아니고 후카사쿠의 연출을 따라하던 일본 예능의 영향으로 보인다. 과거 한국 예능계는 일본 예능을 표절하는 일이 흔했다. 후카사쿠 킨지를 존경해서 오마주 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이런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보기엔 잔인하고 허무하며 급작스러운 전개가 많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기동전사 건담 철혈의 오펀스]]나 [[아키바 메이드 전쟁]] 등이 그렇다. 그나마 [[안도 마사히로(1967)]]의 감독 작품이 호평받는 편이지만 이 감독은 후카사쿠 킨지 연출만 쓰는 게 아니고 여러 일본 영화 연출을 섞어 쓰는 감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